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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서재
[정찬] 소설에 대하여 (섬진강, 베니스에서 죽다) 본문
젊은 시절 그는 작가를 꿈꾸었다. 그에게 세계는 차가우면서 어두웠고, 불가해했다. 문학은 차갑고 어둡고 불가해한 세계 속에서 고요히 빛나는 별이었다. 영혼의 시선이 지상에 갇혀 있을 때 그는 맹인이었다. 어둠에 잠긴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고, 두 팔은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시선이 하늘을 향할 때, 거기에는 별이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에서 따뜻한 별빛이 느껴졌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은 별에 이르는 길이었다. 언어로 이루어진 그 길은 영혼의 성소를 품고 있었다. 언어는, 영혼의 성호를 품고 있는 언어는 삶의 황야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보석이었다. 그는 열망했다. 영혼의 성소 앞에서 무릎 꿇을 수 있기를. 이 꿈의 형상은 유한의 존재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엄성이었다. 역사의 존엄성도 언어가 품고 있는 꿈의 존엄성을 따르지 못했다. (306)
역사의 궤적은 언어의 궤적이다. 언어 없는 정신, 언어 없는 문명은 불가능하다. 정신의 축적이란 곧 언어의 축적이다. 문명의 축적 역시 언어의 축적이다. 정신이 순결하다는 것은 언어가 순결하다는 것을 뜻한다. 문명의 순결은 언어의 순결에서 확인된다. 언어가 세계를 투영하는 거울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언어라는 거울을 통해 세계를 읽는다. 언어가 훼손되면 세계가 훼손된다. 언어가 분열하면 세계 역시 분열한다. 봄날의 폐허는 훼손과 분열의 세계였다. 훼손과 분열의 세계에서 그가 찾고자 한 것은 순결한 언어였다.
역사는 권력의 궤적이다. 따라서 언어의 궤적은 권력의 궤적이다. 그러니까 언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권력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 중 권력의 욕망만큼 깊고 뜨거운 것은 없다. 성의 욕망과 식의 욕망은 육체의 늙음과 함께 시들며, 권태 속으로 자주 빠져든다. 권력은 전혀 다르다. 육체가 늙는다고 해서 권력의 욕망이 시들지 않는다. 오히려 증대한다. 권력의 내장은 언제나 허기져 있다. 허기진 생명은 권태를 느낄 틈이 없다. 권태는 권력을 상실하는 순간 찾아온다. 역사는 이 놀라운 생명이 끌고 다녔던 수레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생명의 내부에는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끌어당기는 속성이 있다. 성은 속을 끌어당기고, 속은 성을 끌어당긴다. 인간 속에 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 중에서 권력만큼 속된 생명은 없다. 이 속된 생명이 가장 열망한 것은 성이었다. 역사의 시간 속에서 신이 되고자 하는 권력자가 끊임없이 나타난 것은 성을 향한 욕망의 결과였다. 권력자가 입는 신의 옷은 언어의 옷이었다. 언어의 휘황한 피륙은 권력자를 신으로 변신시키는 마술의 옷이었다. 권력과 언어는 형상이 다른 쌍생아였다.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비천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308-309)
그에게 소설쓰기란 여행이었다. 그것은 정신의 여행이었던가? 아니었다. 몸의 여행이었다. 정신이 몸이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여행이었다. 한 편의 소설을 쓸 때 그는 뻘 속을 기어다니는 뱀장어였다. 그 뱀장어는 온몸으로 뻘을 헤집었다. 길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뻘 속에는 길이 없었다. 몸 자체가 길이었다. (309-310)
소설은 허구의 예술이다. 여기에서 허구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를 뜻하지 않는다. 소설은 삶의 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생명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허구이면서 허구를 뛰어넘는다. 소설이 역사를 뛰어넘는 것은 허구의 힘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의 실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의 실존을 끊임없이 삼킴으로써 생명력을 증대하는 것이 역사다. 역사 속에서 개인의 실존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력의 실존만 확인될 뿐이다. 소설은 이 불가능성을 역류함으로써 비로소 숨을 쉰다. 역류의 힘은 허구에서 나온다. 개인이 역사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순결 혹은 악이다. 순결과 악은 역사를 견디는 힘이다. J가 순결의 힘으로 역사를 견딘다면 P는 악의 힘으로 역사를 견딘다. (311)
귀신은 과거의 넋이다. 과거의 넋이 지금 이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 귀신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해 옛 인간은 흐른다고 생각했다. 즉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시간이었다. 하지만 강물과 달리 흐르는 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시간은 낮과 밤을 바꾸고, 계절을 순환시키고, 생명의 성장과 소멸을 관장한다. 인간에게 시간만큼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어떤 권력도 시간의 권력을 능가하지 못한다. 절대 권력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자세는 부복이다. 인간은 시간 앞에서 부복한다. 이 부복의 고간 속에서 인간에게 허용된 유일한 반란이 있다. 기억이다. 기억은 인간으로 하여금 한번 흘러가면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절대적 존재인 시간을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기억인 것이다. 기억의 소중함은 여기에 있다. 소설은 기억의 예술적 형상물이다. 그가 시간의 강을 거슬러 5월 광주를 응시한 것은 소설을 쓰기 위함이었다. J와 P는 과거의 넋이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기억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시간은 끊임없이 기억을 지운다. 진정한 기억은 시간의 힘을 견딘다.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기억은 진정한 기억이 아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소설이란 시간을 견디는 소설이다. (323)